우리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강하고 의지가 되는 존재이다. 가끔은 억척스럽기도 하였고,  자신을 돌보지 않으며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존재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흐려지는 기억 앞에서 나의 어머니 역시 예외가 되지 않는다.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어머니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행복하였을까?   

어머니가 47년간 쓰신 가계부를 나는 발견하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가계부 속 과거의 기록은 뚜렷하게 남아있지만, 현재의 어머니의 모습은 무기력해 보이기만 하다. 가계부를 통해 복원되는 어머니의 기억에서 산업화와 현대화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우리 어머니들의 좌절과 고통을 나는 들여다본다. 초창기 여자로 태어나서 원망스럽다며 흔들리던 어머니의 여린 소망의 기억들은 가계부 속 생활의 각박함 속에 봉인되어 있다. 나는 어머니의 잃어가는 힘겨운 기억을 우리 사회는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흐려지는 기억의 시기를 마주하는 운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다큐멘터리는 기록된 17,520일의 세월이 지닌 의미를 찾아, 고되게만 느껴지는 어머니의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기록이다.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운 현재의 어머니에게 이 기록의 과정은 새로운 기억과 지난 시간의 의미를 찾아드리는 여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