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와 지영은 2019년 예술인과 장애인권기관의 협업 사업에서 처음 만났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든 전시 프로젝트는 단기간의 일이었지만, 이듬해부터 팬데믹 기간 내내 둘은 매달 이메일로 근황을 전하고 서로가 찍은 짧은 영상을 교환한다.

편지로 나누는 것은 소소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소소하지만은 않은 맥락이 담겨 있기도 하다. 20대 후반부터 치열하게 장애인권운동을 하다 번아웃을 크게 겪은 지영은 현재는 활동가가 아닌 직장인의 삶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때를 자주 회상한다. 8년 전 유일한 장편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은지는 이후 미디어 활동가로, 시나리오 작가로 동료들과 여러 시도를 해왔지만, 힘을 얻는 만큼 지치고 있다고, 이렇게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자리를 찾기 위해 애썼던 30대를 지나 자신을 돌아보는 40대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 이 편지와 영상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어디쯤 서 있는지 확인하고, 그곳의 우리를 충분히 환대하며 나아갈 수 있을까.